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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자락길을 걷다가
길은 공간과 공간, 시간과 시간, ‘나’와 ‘너’를 이어줍니다. 인간은 그렇게 길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곳과 이곳을 만납니다. 길은 단순히 공간 이동을 위한 통로만이 아닙니다. 길은 ‘나’와 ‘너’의 나눔과 문화를 공유하게 합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랬듯이 이 땅의 길을 걸으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동행할 수 있다면 삶의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산티아고가 아니어도 존재의 의미를 더할 수 있다면 그 길을 함께 걸어보면 어떨까요?
우리나라의 명산들은 대부분 태백산맥 등줄기에 속한 강원도와 경상북도 그리고 내륙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서해에도 명산이 있다는 것은 산에 좀 다닌다는 사람들은 안다. 충청남도에서 서해에 가깝게 있는 명산들은 가야산, 오성산, 성주산 등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 이번 걷고 싶은 곳은 가야산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가야산은 경상북도와 남도의 경계에 가깝게 위치해 있다.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이 산은 유명한 사찰과 함께 기억되는 산이다. 하지만 충청남도 서해안에 있는 가야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과연 우리나라에 이러한 산이 있을까 할 정도의 산으로 서해에 접한 서산과 태안을 품고 있다. 동쪽으로는 예산, 남으로는 홍성의 경계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서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경상도의 가야산과는 또 다른 특별한 매력과 역할이 있다. 경상도의 가야산은 주변에 더 큰 산들이 연이어 있어 골이 깊은 매력이 있는 반면, 여기 가야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서해로 향해 펼쳐진 들과 구릉을 넓게 품고 있다. 하여 서해로부터 불어오는 모든 비바람과 눈보라를 온몸으로 막아선 모습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가야산의 위상이 특별하지만, 정상에 올라 광활한 대지를 지나 펼쳐진 서산의 들과 서산 간척지와 태안반도 너머로 이어지는 수평선까지 한눈에 담기가 벅차다.
상대적으로 작다고 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큰 산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서해로부터 불어오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눈과 비를 품어서 서산과 예산의 들에 물을 공급하니 이 지역 젖줄의 근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깃들어 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동쪽에 터를 잡고 산다. 서북풍을 막아주는 아늑한 산자락이 이어지고, 풍부한 물과 산세가 깃들어 살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쪽 자락 끝에는 온천으로 알려진 덕산이 있다. 그 앞으로 합덕과 삽교로 이어지는 풍부한 식량을 얻을 수 있는 들이 이어진다. 그러니 예로부터 사람들은 가야산 동쪽에 깃들어 터를 잡았다. 그래서인지 훗날 고종 임금의 할아버지 연산군의 묘도 이곳으로 옮겼다. 본래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던 자리에 폐사시키고 묘지를 만들었으니, 당시의 생각으로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산은 계절과 관계없이 걷기에 좋다. 그리 높지 않으면서도 깊은 골과 산정에서 느낄 수 있는 산 맛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자락길과 요즘 만들어놓은 ‘백제 미소길’은 예산 남연군 묘(상가리)에서 시작해서 서산(용현리)까지 이어진다. 또한 남연군 묘에서 원점으로 회귀하는 자락길은 계곡과 숲속 오솔길을 경험할 수 있는 산책길이다. 이 두 길이 요즘 많은 사람이 찾고 있는 곳인데, 두 길이 주는 맛은 많이 다르다.
길은 어디서나 열려있다. 어느 길로 가든 다시 만날 수도 있다. 다만 어디를, 왜 가는가? 그리고 누구와 가는가? 걷는 목적, 과정, 동행 등에 따라서 걷는 의미도, 속도도 다르게 된다. 비록 아무런 목적이 없이 걷는다고 해도 걷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걷는다는 것은 어떻게도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락길을 내려와 자동차로 가야산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대치리 입구에 이르면 근년에 새롭게 자리를 잡은 쉼터 <카페 안김>이 있다. ‘안김’이라는 말을 궁금해 하면서 찾아들었다. 한옥 구조지만 실내는 벽이 전혀 없는 홀로 만든 카페였다. 그렇다고 요즘 대세인 베이커리 카페도 아닌데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SNS에 올릴 사진을 찍기 좋은 분위기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은 왜일까?
아주 단순하게 커피 중심의 메뉴가 있을 뿐, 그리고 공간감이 넓고 높은 실내가 전부다. 특별한 인테리어나 주변 환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차를 댈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할 만큼 손님들이 많았다. 차분히 앉아서 창밖에 묵정밭에 자라는 이름 모를 풀들이 피운 꽃을 보면서 여유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앉아서만 있으니 바리스타가 “혹시 주문을 했는데 아직 안 나온 것은 아니지요?”라고 물었다. 나는 “아니요!” 간단히 대답한 후에 좀 더 여유를 가졌다.
일어나 커피를 주문하려고 다가갔다. 원두를 다양하게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아마도 전략적인 것일 수 있다. 자신이 있는 콩이거나, 바리스타 자신이 좋아하는 원두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하면서 그중에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부탁을 했다. 내 취향이 조금 진한 것을 좋아하니 참고해서 커피를 내리게 했다. 일행에겐 각각 다른 커피를 시켜서 맛을 보았다.
잠시지만 <안김>이라는 이름표처럼 푹 안겨서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내림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니만큼 홍성, 예산, 서산을 지나는 길이 있다면 한 번쯤 지나는 길에 깃들어 쉼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카페를 나섰다.
이종전 목사 (어진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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