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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짐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긴쓰기의 미학
긴쓰기(金継ぎ)는 깨지거나 이가 나간 도자기를 옻칠로 이어 붙인 뒤, 그 균열을 금가루나 은가루로 메워 아름답게 장식하는 일본의 전통 복원기법입니다. 15세기 후반 무로마치 시대의 8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일화가 긴쓰기의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자신이 몹시 아끼던 청자 찻잔이 깨지자 이를 수리하기 위해 당시 도자기 기술이 뛰어났던 중국(명나라)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수리되어 돌아온 찻잔의 볼품없고 투박한 모습에 크게 실망하게 됩니다. 실망한 쇼군을 위해 일본의 장인들이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냈는데요. 흠집을 숨기는 대신 천연 옻나무 수액으로 깨진 조각들을 붙이고, 그 이음새를 화려한 금가루나 은가루로 장식하여 마감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쇼군은 새롭게 탄생한 찻잔의 모습에 만족하여 그 후로는 깨진 도자기들을 버리지 않게 되었고, 이것이 긴쓰기 기법의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상처와 결함을 숨겨야 할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깨졌던 시간을 하나의 역사로 만든다. 흠집을 지우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 그 물건이 살아낸 고유한 역사로 존중한다.” 이러한 철학과 독특한 미학을 담고 있는 긴쓰기는 단순한 수리나 복원이 아닌 재탄생에 가깝다고 평가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긴쓰기 작품이 원래의 도자기보다 더 높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남아 있는 상처의 흔적이 오히려 그 도자기를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완벽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시련을 견뎌낸 흔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가치를 인정받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은 어렵고 공이 많이 들어갑니다. 물레로 만들면 1주일에 수십 개도 만들 수 있지만, 긴쓰기는 1개를 만드는데 한 달도 걸립니다. 그러나 기다림과 인내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러니 깨졌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장인(匠人, Master)을 만나 흠과 상처가 어떻게 해석되고 재탄생하는가가 관건입니다.
긴쓰기에 대해 읽으며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모든 사람, 하나님이 불러 쓰신 모든 사람은 상처와 결함을 가진 깨진 도자기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베드로, 바울, 단 한 명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흠 없는 자가 아닌 흠 많은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폐기 처분합니다.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깨졌기 때문입니다. 보기 흉한 흠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사랑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의 귀한 일을 맡겨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상처와 결함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아브라함의 실수와 다윗의 실수를 적나라하게 기록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일도,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의 부끄러운 과거도 과감하게 드러냅니다. 그리하심으로 지난날의 상처와 실패로부터 자유하게 만드시고, 그들의 인생을 새롭게 빚어내십니다. 깨진 도자기 같은 그들은 장인이신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유일하고 독특한 걸작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니, 깨졌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장인(匠人, Master)을 만나 인생에 남은 흠과 상처가 어떻게 해석되고 재탄생하는가가 관건입니다.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상처와 균열은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시간과 기억을 대하는 태도이다.
많은 이들은 감추거나 회피하려 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건강한 방법은 아니다.”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나는 나의 상처와 흠집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내게 남은 흠집과 상처들을 좋으신 아버지의 손에 맡겨드렸습니까?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보기 흉한 흠이 아닌 나의 인생을 독특한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드는 특별한 재료가 되었습니까?“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the new creation has come: The old has gone, the new is here!(NIV 2co 5:17)”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the new creation has come: The old has gone, the new is here!(NIV 2co 5:17)”
우리 모두에게 샬롬이 있기를 바랍니다.
김건우 목사 (좋은씨앗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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