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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늘이 만나는 곳
파주 출판단지에 가면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많습니다. 자칫 건조해 보일 수 있는 콘크리트 건물이 멋지게 보이면서 놀라움을 줍니다. 노출 콘크리트를 대중화하는 데는 안도 다다오의 영향이 큽니다. 그는 노출 콘크리트를 주로 사용해 기하학적 건물에 빛과 물을 건축 요소로 끌어들여 자연과 소통하는 건축을 만들어 냈습니다.
“건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건물을 이용할 사람을 배려하는가, 정해진 약속을 지키고 있는가다.”
건축에 대한 안도 다다오의 철학을 명확하게 요약해 주는 말입니다. 건축은 결국 그 건물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반영하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그것이 개인 주택이든, 회사이든, 학교이든 말입니다.
안도 다다오가 건축의 장인이 되는 데는 할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외가에서 자랐습니다. 외할머니는 기본적인 예절 교육에 엄격하셨습니다. 약속을 지키고 시간을 지키고 거짓말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린아이에게도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하고 자기 책임 아래 행동하는 독립심을 요구하셨습니다.
다다오가 세계적인 건축가로 오늘날 인정받고 있지만, 그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집안 사정도 넉넉하지 못했고 학습 능력도 떨어져서 대학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공업고등학교 기계과 졸업이 안도 다다오의 최종 학력입니다. 그래서 독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자유롭고 느긋하게 공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점심시간에 빵을 먹으면서 책을 읽었고, 밤에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공부했습니다. 또한, 식비를 줄여서라도 해외 서적과 잡지를 사서 읽고 견문을 넓혔습니다.
이렇게 생활하면서 그는 점진적으로 서구의 건축 양식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결국 다다오는 스물네 살이 되던 해, 일본에서 일반인의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부터 시작해 유럽 여러 나라의 도시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후 화객선을 타고 아프리카, 인도, 필리핀을 경유해서 약 7개월 동안의 여정을 마무리 하고 일본으로 귀국합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 그는 건축에 대한 방향성을 갖게 됩니다.
안도 다다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거대 쇼핑센터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 리조트 개발 등의 사업을 의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안도 다다오는 돈이 된다고 해서 무조건 계약하지 않았습니다. 상업성이 지나치게 강한 작업이나 건축주와의 인식 차이가 큰 작업은 사양했습니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에 기본적인 ‘틀’을 마련해 주는 원리는 ‘빛과 그늘’입니다. 그는 자신이 쓴 책에서 빛과 그늘에 대한 원리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건축에는 이 두 가지 측면이 매우 중요하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그의 삶이 주는 경험 그 자체를 통해 빛과 그늘,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다다오의 화려한 성공 이야기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더 많았고, 뭔가를 시작해도 대개 실패로 끝나는 일이 많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의 할머니가 심어주신 인내력이 빛을 발했습니다. 안도 다다오는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과 맞부딪혀도 희미한 가능성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그늘 속, 어둠 속을 걷고 조금씩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희망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안도 다다오는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령 나의 이력에서 뭔가를 찾아낸다면, 아마 그것은 뛰어난 예술가적 자질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뭔가 있다면 그것은 가혹한 현실에 직면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남으려고 분투하는 타고난 완강함일 것이다.”
그는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눈앞에 있는 현실이라는 ‘그늘’을 정확히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그 그늘을 뛰어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안타깝게도 현대인은 빛이 선명하게 보이고 볕이 드는 쪽으로 가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둠과 그날 앞에서도 멀리 있는 빛을 가늠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몰입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문제에 직면하면 쉽게 포기합니다. 빛이 보이지 않고 그늘에 들어섰다고 느끼면 쉽게 방향을 틀어버립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안도 다다오는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던져 줍니다. 빛은 그늘과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김요한 대표 (사단법인 WA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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