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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그 너머
전도사 시절, 한때 고등부와 청년부를 동시에 섬기면서 나름 많은 부흥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바빴고, 사람들과 늘 어울렸고, 잘 웃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임이 끝나고 혼자 돌아오는 길엔 늘 말할 수 없는 공허함과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 있는데, 왜 이렇게 혼자라고 느껴지는 걸까?”
시간이 한참 지나서 그것이 ‘외로움’의 감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느 날은 사람들을 만나기조차 싫어졌습니다. 그런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고, 내 마음속에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가? 내가 이상한 건가?” 싶어 자책하고, 더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점점 더 메말라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늦게 조용한 골목을 걷다가 주머니에 넣어둔 이어폰을 끼고 무작정 성경을 들었습니다. 그날 들은 말씀이 요한복음 16장 32절이었습니다.
“너희가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그 순간, 그 말씀이 내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내가 너를 가까이하고 있어. 사람들 속에서 네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안다. 나는 너를 떠난 적이 없어.”
그 말씀 앞에서 처음으로 내 외로움을 감추지 않고 하나님 앞에 꺼내 놓았습니다. 그날 밤, 겉모습의 변화는 없었지만 제 안에 뭔가, 마치 주님이 작은 불빛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 등을 켜주신 것 같았습니다.
그 후, 성경 속 외로운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고 이방 땅에서 홀로 있었습니다. 다윗은 굴속에서 자신을 버린 듯한 순간을 지나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 불릴 만큼 늘 외로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에서 외로움의 잔을 홀로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외로움 속에서 가장 깊이 하나님을 만났고, 가장 큰 부르심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로 빚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깨달았습니다. 외로움은 ‘결핍’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깊이 만나시기 위해 준비하신 공간이라는 걸요.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요구(소속, 공감, 의미)를 반영하는 신호입니다. 그 자체가 병이라기보다는 내면의 공허를 채우기 위한 구조적 필요를 드러내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은 그것을 ‘회피하거나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잘 들여다보고 돌봐야 할 정서적 신호로 받아들이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에겐 말씀이 있습니다. 외로울 때 말씀 앞에 서서 나 자신을 더 정직하게 마주해 보십시오. 사람으로도 채워 줄 수 없고, 바쁜 일정도, 성공도, 사랑조차도 해결할 수 없는 그 외로움의 자리에 오직 주님만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이 지나고 난 뒤, 저는 누군가의 외로움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전엔 몰랐습니다. 그 조용한 눈빛 뒤에, 그리고 “괜찮아요”라는 말 뒤에, 얼마나 많은 외로움이 숨어있는지를요.
혹시 지금, 외로우신가요?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나조차 왜 이런지 모르겠고, 믿음도 예배도 기도도 그저 형식처럼 느껴질 만큼 속이 비어있다면. 그 공간이 바로 하나님이 당신을 깊이 초대하시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외로움의 시간을 잘 지나고 나면 마음이 더 단단해지고,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더 따뜻해지고,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진실해집니다.
“주님, 외로운 이 길 위에서 당신을 깊이 만나게 하소서. 사람의 소리보다 당신의 음성을 더 크게 듣게 하시고, 이 마음의 빈자리에 성령의 따뜻함으로 채워주소서.”
“내가 여기 있다. 너를 보며 울었고, 지금도 너와 함께 있다. 너의 친구, 너의 아버지다.”
외로움은 끝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시작입니다. 그 깊은 곳에 계신 주님을 만날 때, 나는 다시 웃을 수 있습니다.
장준영 목사 (혜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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