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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다, 그리고 머물다
여름이면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납니다. 짐을 꾸리고, 지도를 보고, 낯선 곳에서의 설렘을 상상하는 시간. 여행은 어쩌면 도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반복되는 인간관계에서 잠시 거리두기를 하며,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물리적·심리적으로 떨어져 나오는 순간, 우리는 잠시나마 나답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런 ‘떠남’의 순간은 단순한 휴식 그 이상으로 우리의 마음에 작용합니다. 삶의 무게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시간은 억눌려 있던 감정을 마주하게 하고, 내면의 공허함과 마주할 용기를 줍니다. 동시에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꾸려가고 싶은지 질문하게 만드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여행 전, 우리는 계획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낍니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입을지, 어떤 음식을 먹을지 상상하는 순간마다 뇌는 도파민을 분비하며 이미 여행이 시작된 기분을 선물해줍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예상되는 즐거움(anticipatoryjoy)이라고 불리며, 때로는 실제 경험보다 그 기대감 자체가 더 큰 만족감을 주기도 합니다. 현실은 그대로이지만,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여행의 장면들은 지친 일상에서 마음을 잠시 환기시켜주는 창문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낯선 장소에 발을 딛는 순간, 우리의 마음도 함께 변화합니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난 뇌는 새로운 자극에 열려 있게 되고, 예상치 못한 경험 속에서 작은 용기를 배우게 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방향을 묻고, 혼자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실수하면서도 웃으며 길을 찾아가는 그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이만하면 괜찮은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과 성장의 감정은 여행의 진정한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설렘과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마지막엔 언제나 ‘돌아옴’이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설렘과 긴장이 서서히 가라앉고, 익숙한 일상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옵니다.
집 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와 공기가 나를 감싸고, 마치 자동으로 연결되는 와이파이처럼 마음도 일상에 다시 접속됩니다. 집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그 안에서 나를 기다리는 일상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여행이 자유를 주었다면, 집은 안전과 안정을 다시 기억하게 해줍니다. 낯선 풍경 속에서 마음껏 펼쳐졌던 나의 감정과 생각은 익숙한 공간에 다시 돌아와 조용히 정리됩니다.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내던 일상이 여행 후에는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창문 너머 햇살과 주변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들, 식탁 위에 놓인 평범한 그릇 하나조차도 새삼스레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떠났던 이유가 무엇이든 다시 돌아온 그 자리는 여전히 나를 받아줍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삶을 걸어갈 힘을 얻게 됩니다.
여행은 우리 삶의 축소판과도 같습니다. 떠나고, 낯선 것을 만나고, 용기를 내고, 다시 돌아와 안기게 되는 여정.
어쩌면 우리 신앙의 여정도 이와 닮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떠나보내시고, 광야 같은 곳에서 만나 주시며,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늘 함께 계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번 여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마음속에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여행에서 나는 무엇으로부터 잠시 떠나고 싶은가?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새롭게 만나고 싶을까?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낯선 곳에서도
다시 돌아온 집에서도
여전히 하나님 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오선미 소장 (한 예술치료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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