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이 허물어뜨린 평면과 입체의 경계 트릭아트(Trick Art)라는 장르의 설치 미술이 한동안 크게 유행했습니다. 처음에는 대형 특별전 형식으로 열리던 것이 언제인가부터는 작은 전시관에서나 거리에서 소개되기도 하고, 상설 전시로 탈바꿈하여 연중 어느 때나 감상할 수 있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트릭아트가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2차원의 공간을 3차원으로 느끼게 해주는 착시현상이 매우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가 직접 작품의 중심에 뛰어들어 그림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기도 합니다. 일방적인 감상이 아니라 작가와 소통하며 새로운 작품을 끊임없이 창조해내는 것이 트릭아트의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프트 카오스:공간 상상`’은 트릭아트와는 다른 전시입니다. 하지만 2차원과 3차원, 즉 평면과 입체의 착시를 이용한 표현 예술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트릭아트가 재미난 표현을 통해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 그친다고 한다면, 소프트 카오스는 차원과 차원을 넘나드는 경험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공간의 의미를 성찰하게 합니다. 특별히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 환경들이 가지는 다차원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차원적 그림이라고 여겼던 작품에 거리를 좁혀 다가서면 3차원의 입체조형물로 치환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착각에서 해방되어 실체와 마주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차원과 차원의 경계에 서서 느끼는 관람자의 미묘한 감정은 당혹감과 카타르시스의 중간 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현미 작가는 주어진 공간을 넓고 시원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지하에 넓게 배치된 전시물의 전경을 상층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합니다. 이어 관람자는 작가의 전시 의도에 따라 하나둘 계단을 내려가며 평면이 입체가 되고 입체가 평면으로 바뀌는 인지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입체와 평면이 적절한 위치에서 이어지고 끊어지고 변환되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이런 착각 때문에 나의 인지 부조화를 자책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 착각이야말로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공간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해주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죠.
거울을 활용한 작품에서는 실재와 실재하지 않는 것들 사이,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게 됩니다.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풍경이 각도를 기울여 보면 보이게 됩니다. 제한된 공간은 거울을 통해 확장되어 두 배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잘려나간 거울의 면적만큼 축소되기도 합니다. 단지 거울 하나만으로도 공간의 자유와 속박을 동시에 경험합니다. 실재 공간을 구성하는 질량과 그 공간이 차지하는 면적은 그대로인데 시각적인 착각 하나만으로도 심리적인 해방감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전시는 어린이 전시관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어린이들만을 위한 전시라고 제한
하기에는 너무 아쉽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녀를 동반한 성인들만 아니라 성인들끼리 감상하기에도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전시입니다. 어린이들은 특별 프로그램을 통하여 직접 테이핑이나 드로잉을 해보며 작가의 작품에 직접 참여도 가능합니다. 무더위가 부쩍 다가와 우리를 숨차게 만드는 계절, 상상력을 통해 입체와 평면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원한 공간 전시를 감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Info
일시 | 2019년 3월 26일(화) - 2019년 9월 22일(주일) 장소 | 북서울시립미술관 티켓 | 무료입장 문의 | 02-2124-8928 길상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