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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8-09-27 (목) 08:34 조회 : 1829

김밥천국

김밥들이 가는 천국이란 어떤 곳일까,
멍석말이를 당한 몸으로
콩나물시루도 아닌데 꼭 조여져서
육시를 당한 몸으로
역모를 꾸민 것도 아닌데 잘게 토막이 나서

나란히 누운
치즈복자, 참치복자, 누드복자들
순교의 뒤끝에서 식어가는 밥알은
김밥들이 천국에 가기 위해 버려야 하는
헐거운 육신이다

김밥들이 가지 않는 불신지옥도 있을까
버려진 몸들답게 김밥들은 금방 쉰다
시금치는 시큼해지고 맛살은 맛이 살짝 갔지
계란은 처음부터 중국산이야

마음이 가난해도 천오백 원은 있어야
천국이 저희 것이다

천국에 대한 약속은
단무지처럼 아무 데서나 달고
썰기 전의 김밥처럼 크고 두툼하고 음란하지
나는 태평천국의 난이
김밥에 질린 세월에 대한 반란이라 생각한다

너희들은 참 태평도 하다
여전히 천국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복장 터진다는 말은 김밥의 옆구리에서
배웠을 것이다
소풍 가는 날에 비가 온다는 속담도
쉰 김밥이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깨소금이 데코레이션을 감당하는 그 나라,
김밥천국
자기들끼리만 고소한 그 나라 바깥의
불신지옥

 - 권혁웅 <김밥천국에서>

많이는 못 먹어도 딱히 가리는 음식은 많지 않지만, ‘김밥’은 즐겨 먹는 메뉴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더라는데, 이를테면 어릴 적 ‘그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없어 못 먹던 음식이 ‘그것’이더랍니다. 한 끼 식사를 위해 그 집에 들거나, 식탁에 그 메뉴를 불러오는 일이 없어진 건 ‘그것’이 ‘천오백 원’ 짜리 김밥으로 전락한 때문이었을까요.

그 귀하던 바나나가 흔해지면서 ‘귀함’을 ‘천함’으로 여기더랍니다. 어쩌면 ‘이것’도 더는 귀하지 않아 군침부터 말랐던 모양입니다. 군침 도는 ‘귀한’ 것들이 지천이니까요.

“김밥들이 가는 천국”이라. ‘그런 곳’이 있을까 싶다가도 본래 천국은 ‘그런 곳’인 거지 고개를 주억거리게 됩니다. “멍석말이를 당한 몸”이라든가 “꼭 조여져서 육시를 당한 몸” 혹은 “잘게 토막이 나서 나란히 누운” 그 모양이 어쩐지 예수께서 ‘나를 따르려면’ 하시며 덧붙인 말씀을 쏙 빼닮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고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복음 16장 24-25절).”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워야지요. ‘자기’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시대 가치와 영 어울리지 않는 말씀인걸요. ‘왕따 강박증’이랄까요.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 ‘자기’가 아니라 ‘저사람’을 ‘부인’ 시키며 사는 노심초사의 습관에 길든지 벌써 오래.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노라고, “하나님의 나라”란 ‘그들’의 것이라 하신 예수님 말씀을 같잖게 듣고 사는 대단한 이들은 ‘김밥’의 ‘참시’에 군침이 돌 리 없습니다. ‘김밥’들의 ‘천국’이란 별 것 없는 단무지, 시금치, 중국산 계란들의 ‘버려진’ 땅입니다.

“버려진 몸들답게 김밥들은 금방” 쉬지요. 날 더운 이 계절에는 하루 이틀 넘기기도 어렵습니다. 버틸 힘이 없는 게지요. 쉰내가 폴폴 나는 ‘상한 심령’을 누가 거들떠나 봐주던가요. 눈물도 눈물 나름, 동서고금 없이 사람은 ‘악어의 눈물’에 더 벌벌 떠는 법이니까요. 그러니, 저 서럽고 외로운 이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 준답니까. “천국에 대한 약속은 단무지처럼 아무 데서나 달달한 것이겠지만, 알고 보면 그 달콤한 약속이란 썰기 전의 김밥처럼 크고 두툼하고 음란한 현실이기도 한 것이지요.” 할 말 없어지는 대목입니다.

예수께서는 찾아 나선 자리가 다 저 쉰내나 버려진 저 ‘김밥집’이었다던가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다”고, “나는 의인이 아니라” ‘병든 자’와 ‘죄인’을 부르러 온 거라 하셨다지요. 그러니 “너희는 가서 ‘내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로운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복음 9장 13절).” 따끔한 한 말씀도 주셨답니다. <새벽의 집>이라는 밴드가 있더군요. 이 땅의 단무지, 시금치, 쉰내 나는 김밥집을 찾아 나서며 노래하는 이들이라는데, 그들의 노래와 함께 ‘이 땅’도 <김밥천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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