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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7-04-27 (목) 09:06 조회 : 2045
오래된 미래 - 오늘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는 오래된 약속의 길

우리에게는 어떤 인류도 경험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길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 있는 길은 당연한 듯 하지만 생각할수록 경이롭습니다. 단순한 길이건 먼 길이건 길이라면 출발지와 도지는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끊어진 구간이 없어야합니다. 그렇게 이어져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을 멀리내려다보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쉬지 않고 꿈틀대며 흐르듯 보입니다. 물리적으로 확장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개념도 그 길을 따라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길이 있어도 필요에 의해 새로운 길은 열리고 사람이 찾지 않아 왕래가 뜸하면, 그 길은 닫히고 맙니다.

그 길은 하늘의 비행기 길도, 물의 뱃길도, 정상을 향한 가파른 길도, 꼭대기에 오르기보다 빙 둘러가는 둘레길도 이 나라 저 고을에서도 유행처럼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길을 찾아다니던 나는 1990년 초 오래 사용하지 않아 이름만 있고 오히려 끊긴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비단길입니다. 그 길을 취재하며 카라코람 하이웨이라 불리는 산중 하늘 길을 따라 흐르는 인더스 강에 닿았습니다. 파미르고원을 넘어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을 지나 일주일을 쉬지 않고 물과 함께 내려가는 그 길이 내겐 충격이었습니다. 세계 삼대 산맥인 카라코람, 힌두쿠시, 히말라야가 모인 자리에 우뚝 솟은 하나의 바위덩어리 낭가파르바트!

거기가 바로 우리 조상들의 시간과 공간이 묻혀있는 비단길 중 가장 험준한 실크로드의 한 자락입니다. 경주에서 로마로 이어진 그 사연 많고, 한까지 맺힌 바로 우리의 비단길. 왜곡된 우리의 조선과 고려를 넘어 신라와 대진국, 백제, 고구려, 가야, 북부여, 고조선 배달겨레를 관통하는 중앙아시아 나라들과 연결된 시간과 공간의 뿌리를 확장시킬 수 있는 오래된 미래가 앞으로 21세기 아시아와 유럽이 하나로 연결되었던 아름답고 부드러운 새 시대의 비단길입니다. 

그 길 가운데 나는 아주 신비로운 길을 만났습니다. 사람의 왕래가 끊어진 유대 광야에서였습니다. 지역을 지키는 이스라엘 군인의 안내를 받아야 했습니다. 길은 이미 없었지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무작정 가다가 예루살렘성이 아련히 보이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더 이상 마를 수 없을 만큼 걸을 때마다 먼지가 폭삭 일어나는 흙바닥, 역시 말라 비틀어져 버린 풀들, 가끔 허한 공간에 포인트를 주려고 일부러 심어 논 듯한 나무들. 광야입니다. 

거기 멈춰 서서 골짜기 넘어 예루살렘 성을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거리는 멀어도 금빛 돔이 강한 태양보다 더 번쩍였습니다. 예수님이 깊이 우셨다는 바로 그 장소가 아닐지라도 이천 년 그리고 다시 더 수천 년을 넘어 성경에 역대 급으로 기록된 수많은 얘기들이 생각나 가슴이 쿵탕거립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얘기들은 우리 인간사에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급하게 간섭하신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사건으로 기록되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 주인공들은 시간적 간극을 넘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의 마른 흙에 얼굴을 묻고 손톱이 빠지고 닳도록 거친 땅을 긁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수많은 인생들의 사연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책이 머리에 떠오르며 지나갑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매캐한 흙냄새가 숨 쉴 때마다 가슴에 차 오릅니다. 나는 긍휼을 구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렁이도 벌레도 아니었습니다. 먼지보다 못한 하찮은 스스로가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었습니다.

얼마를 그렇게 있다, 정신을 차리고 메고 있던 카메라 가방에서 트라이포드를 내려 펼치고 그 위에 카메라를 걸었습니다. 바람에 떠는 유대 광야의 마른 풀이 담겼습니다. 그리고 바람도 담겼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생소한 길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길이 많았지만 내 눈에 익숙한 길은 난 지 오래된 길 하나뿐이고 나머지 길은 모두 사람이 낸 길이 아닙니다. 그 길에 가까이 가보았습니다. 그 길의 폭이 10센티미터? 넓어야 15센티미터입니다. 짐승이 낸 길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많은 얘기가 있고 가는 곳마다 볼거리가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만들어 꾸며 놓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여기 짐승이 낸 길 위에는 바람과 빛이 가득합니다. 거기서 낮고 부드러운 구릉 사이로 잦아지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며 나에게 관여하셨던 주님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이 시간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확인하고, 또 다시 열리길 기다리고 있는 큰길 -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오래된 비단길에 예비해 놓으셨을 주님의 사랑을 꿈꾸어 보았습니다.


함철훈 교수 (몽골국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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