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의 윗목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 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별 보기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해가 떨어졌다고 별이 뜨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고, 별이 떴다고 그걸 바라보는 세상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드문 별 몇 개 헤아리자고 서울 하늘에 창을 내는 사람이 몇이나 되던가요. ‘별 볼일 없는 세상’이 되어 가는 모양입니다. 어릴 적 고향 밤하늘에는 별이 참 많이 달렸었지요. 별이 달리고 그 달린 별을 헤아렸던 ‘밤’은 어둡거나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별똥별 떨어지는 그 눈 깜짝 할 새를 놓치지 않으려 두 눈 부릅뜬 일곱 살, 아홉 살은 그래서 총기가 환했던 건지도 모르지요. 그 유년의 총기가 아니었다면 쉰 살 중년의 흐릿한 노안과 자주 깜박하는 이 건망은 이십 년쯤 더 당겨졌을 겁니다. 어쩌면 제 유년이 저를 먹여 살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찌 사람이 별만 바라보고 살 수 있던가요. ‘달’은 달이고 ‘6펜스’는 6펜스인거지요. 유년의 추억이 다 아름답지만은 않았겠더라는 겁니다. 글쎄요. ‘다 아름다운 유년’이 어떤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기억은 다 추억이 되고 그래서 아름다울 수 있는 걸까요. 더러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추억’이 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예쁜 별을 헤아리는 어느 한 날 밤, 그 별이 사탕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별똥별의 쏜살같은 궤적을 쫓아 달려가는 시선이란 누군가에게 떨어질 사탕 한 알에 대한 부러움이기도 했겠지요. “하늘에는 벌써 튀밥 같은 별들이 떴다.”(기형도 <위험한 家系 · 1969>부분). 그것이 ‘사탕’이 아니라 ‘튀밥’같이 보이는 유년의 현실은 얼마나 혹독했을까요.
열무 한 단이 흔해 빠졌던 시절, “열무 삼십 단” 값은 얼마나 했을까요. 다른 반찬 상에 올리기 어려웠던 시절인데, 그 열무 서른 단 시장에 내 팔러 가신 ‘우리 엄마’는 웬 걸음이 이리 더딘 걸까요. “해는 시든 지” 벌써 “오래”, 엄마의 삼십 단 열무는 아직도 다 덜지 못했나봅니다. “찬밥처럼 방에 담”긴 어린 자식, 엄마 눈앞에 삼삼할 텐데도 엄마는 쉬이 남은 열무 단을 거두지 못합니다. 아니, 거둘 수 없었던 거지요. 이걸 다 팔아야 그나마 아홉 식구 입에 풀칠이라도 하지 싶으셨던가요. 해 떨어지면 열무 값도 더 떨어지는 것이겠지만, 떨어진 값으로라도 덜고 가야할 열무 삼십 단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서른 단 앞 엄마의 기다림은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닿지 않는 그 기다림과 같았을 겁니다.
“타박타박”, ‘배추잎 같이’ 힘없는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 “금간 창 틈”같은 시간이란 얼마나 “어둡고 무서”운 것이었을까요. 해 떨어지면 세상이 다 고요해 졌던 시절, 저 ‘고요한 빗소리’는 아이의 '빈방'을 얼마나 더 서늘하게 했을까요.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소리의 공명은 또 얼마나 서러운 것이었을까요. 그게 벌써 스무 해 전. “아주 먼 옛날”이 되었다지만, 그것은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시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인은 그 시절을 두고 “내 유년의 윗목”이라 부릅니다. 뜨끈해지는 건 시인의 눈시울만이 아닙니다. 저 ‘유년의 윗목’으로 떠오르는 모든 기억은 그렇듯 다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것이겠습니다. 아, 어쩌면 이렇게 우리 가슴을 저미게 한단 말입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그 가슴 저민 슬픔과 아픔을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운 말로 적어 옮길 수 있을까, 그게 참 놀랍습니다. 분명 시리고 아린 회상이겠는데, 거기엔 어떤 원망도 회한도 없어 보입니다. 그저 ‘뜨거운 눈시울’로 향하는 그리움이 보일 뿐입니다. 이 ‘아름다운 슬픔’ 혹은 ‘슬픔의 아름다움’이란 그저 천재적 시인의 서정적 표현의 탁월함으로 전해지는 것만은 아니겠습니다. ‘재주’로 전해지는 감정이 아닌 거지요. 그보다는 그리움의 ‘내용’ 때문일 겁니다. 누구라서 그 찬 ‘윗목’을 다시 그리워할까요. 그리운 건 저 시린 ‘윗목’이 아니라 그 윗목에서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며 기다렸던 ‘엄마’인 거지요. <엄마 걱정>. 엄마, 그리고 가족. 참 마음 아픈 이름이고, 두고두고 그리운 이름입니다.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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