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값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 <긍정적인 밥>
맛있게 밥을 먹었습니다. 실은 밥이 아니라 고기를 먹은 건데 그 집 삼겹살 맛이 유난스러웠던 까닭입니다. 열 몇 시간의 숙성을 자랑하는 종업원의 호들갑이 괜하지 않았어요. 이 정도면 더한 호들갑도 들어줄 만했습니다. 고기 식사량이 많지 않은 편이지만 양껏, 양에 넘치도록 주워 담았답니다. 오랜만에 자리를 같이한 지인이 놀라요. ‘이렇게 잘 드시는 것 처음 봤어요.’ 그랬나봐요, 그랬을 겁니다. 곁에 있던 아내가 흐뭇하게 거듭니다. ‘요즘 밥을 잘 드세요.’ 아이 돌보듯 남편을 챙기는 아내. 정성껏 차려놔도 푸짐하게 먹는 날 드물고, 기껏 먹여놔도 근 수가 달라지지 않는 남편의 형편을 안타까워했었습니다.
많이 먹지 않았어도 소화제를 찾는 날이 많았다지요. 아직 소화제를 두고 살지만, 먹는 양이 늘었고 약을 찾는 손은 줄었습니다. 천고마비의 시절도 아닌데 밥이 맛있어졌어요. 먹어도 살오르지 않는 건 여전하지만 먹어서 탈 나는 날이 드물어졌습니다. 그런 날을 여럿 지내다 보니 밥상머리에 앉는 게 기껍고 즐겁습니다. 산해진미가 아니어도 도는 입맛이 찬이 되고 양념이 돼, 밥이 꿀떡 넘어갑니다. 이런 밥상으로 백일을 지나고 천 일을 보내면 말라깽이를 졸업할 수 있을까요? 흠흠… 뭐 꼭 그러지 않더라도 ‘요즘 밥 잘 먹는다’며 좋아하는 아내의 그 예쁜 좋음에 찬물 끼얹지 않는다면 그저 다행이겠습니다.
늦은 아침인지 이른 점심인지를 받아든 토요일. 한 상 툭 털어내고 든든한 걸음을 나섭니다. 푹한 겨울이어도 겨울은 겨울, 손끝이 시려요. 양지바른 길 벗어나 그늘을 지나는 몸이 썰렁해집니다. 그래도 부르르 떨지 않고 걷습니다. 가뿐, 걸음에 힘이 생겨요. 그게 다 맛있게 먹은 한 끼, 든든한 밥심이겠습니다. 밥이 고마워지는 걸음이고 밥 한 끼로 든든해지는 아침입니다. 그런데 그게 칼로리와 에너지로만 따져 얹을 힘은 아닐 겁니다. ‘잘 먹는 밥’을 좋아하는 아내 마음이 한 스푼, 그 좋은 모습 보려고 애써 차린 정성이 또 한 스푼, 그러려고 추운 날 부러 시장까지 다녀온 수고 한 스푼을 얹어 힘이 된거겠지요.
먹었으니 밥값을 해야 합니다. 뭘로 밥값을 할까요. ‘가서 돈 벌어오시오’ 하고 밥 먹인 마음은 아니겠으니 돈 벌 생각으로 밥값 따져 묻지는 말 일입니다. ‘가서 맘대로 사시오’ 내 준 마음도 아닐 터, 괜한 짓거리로 밥값을 헐값 되게도 말 일이지요. 밥 차려 준 사람 마음에 딱 맞는 밥값, 그게 뭘까요. 혹시, ‘고마움’은 어떨까요. 고마움으로 내놓는 밥값이란 게 있어요. 내 식구가 차려준 밥상이 아니어도, 어디서 얻어먹은 밥상이더라도, 고마움으로 밥값을 낼 일입니다. 내 돈 내고 먹는 밥이라고 음식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겠어요. 내 돈을 주고 먹더라도 음식 내놓는 사람 앞에 고마움의 밥값을 따로 내놔야겠습니다.
그래요,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좀 “박하다”싶습니다. 고마움을 빼고 단 무게는 늘 박한 법이지요.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그 ‘삼만 원’이 “마음 따뜻한” 고마운 밥 됩니다. 저울은 늘 수고로 기우는 법이겠지만, 내 수고가 아니라 고마움으로 기우는 저울을 가져야 밥 한 끼에 맛있게 배부른 법입니다. 따지자면 내 수고가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만큼 따뜻하지 못했습니다. 박리다 싶다지만 ‘굵은 소금 한 됫박’에 비길 수고는 아니지요. 그걸 생각하면 마음 상할 게 없어요. ‘삯꾼 목사’ 이러니저러니 하지만, 삯 받은 만큼만이라도 따뜻하게 일할 수 있으면 다행인 겁니다. 밥 잘 먹었으니 밥값 하겠습니다. 평강.''
이창순 목사(서부침례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