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CH 정기구독
정기후원
   

[전시] 종이, 봄날을 만나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4-09-13 (금) 08:28 조회 : 233
종이의 화려한 외출



손 편지를 쓴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러고 보니 종이에 연필로 사각사각 글을 쓴 지도 언제인지 모르겠네요. 종이와 연필만 있어도 온종일 놀 수 있었는데 말이죠. 아! 색종이 접기도 빼놓을 수 없고요. 요즘은 학교에서도 전자 패드로 수업을 많이 한다니 앞으로 종이 사라락 넘기는 소리 듣기는 더 어려운 걸까요?



종이는 빛과 바람으로 빚은 가볍고 연약하지만, 변용이 다양하며, 천년을 잇는 강인함을 지닌 소재입니다. 종이가 무언가를 쓰거나 그릴 수 있는 필기도구에서 벗어나 옷도 되고 그릇도 되고 가구도 된다면 어떨까요?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장상훈)은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열린수장고 16에서 <종이, 봄날을 만나다> 특별전을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는 개방형 수장고에서도 비개방 영역에 보관되어 있던 소반, 옷본, 모자함 등 지류 소장품들을 선보이는 특별한 자리입니다. <봄날>은 비개방 수장고에 보관된 지류 소장품들의 특별한 나들이라는 의미와 함께 현대 작가 작품과의 조우를 통한 전통의 지속 가능성, 곧 ‘종이 공예의 봄날’이라는 미래 가치를 중의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비개방 영역에 보관되어 있던 특별한 소장품들을 볼 수 있어 우리에게도 봄날, 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종이 공예에 있어서도 봄날인 거죠.



우리가 잘 몰랐던 종이 공예는 지장, 지호, 지승 등 대표 기법들이 있습니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지승은 종이를 일정 간격으로 잘라 끈을 꼬아 엮거나 매듭지어 기물을 만드는 기법이며, 지호는 종이를 풀과 섞어 죽처럼 만들어 형태를 완성하는 기법이고, 지장은 종이를 여러 겹 발라 두터운 후지를 만들고 그 표면에 기름을 칠하거나 옻칠을 올려 완성하는 기법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기법만 보아도 우리 선조들의 종이 기물들이 궁금해집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기법을 가진 작품들을 100여 점이나 만나 볼 수 있는데요. 재밌는 것은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건물 외관에서부터 종이의 환영이 시작됩니다. ‘종이의 환대(Welcome Greeting of Paper)’라는 주제로 파사드에 설치된 318장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며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이어지는 열린수장고 16 입구에는 남지현 작가의 지화 설치 작업 ‘백화’가 관람객의 봄나들이 정취를 북돋아 줍니다.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수장형 전시, <종이, 봄날을 만나다>는 종이 공예의 다양한 기법과 활용을 보여주는 1부 ‘창의성의 향연’, 의·식·주로 분류된 지류 소장품을 소개하는 2부 ‘멋과 맛과 결을 품은’, 종이 공예의 전승 관점에서 현대 작가 작품을 만나는 3부 ‘지평의 확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관람하는 내내 우리는 이런 공통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게 종이로 만든 거라고? 말도 안 돼, 너무 아름답고 단단하잖아!’



종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엿볼 수 있는, 정말 종이로 시작해 종이로 끝나는 전시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보다 종이는 위대하고, 아름답고, 또 미래 가치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종이는 봄날을 만나고, 우리는 봄날의 종이를 만나게 될 겁니다.



이기선 기자

   

QR CODE
foot_이미지
개인정보취급방침 이용약관 이메일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