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켈란젤로 3C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와 더불어 르네상스의 3대 거장 중 한 명, 미켈란젤로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삼촌들에게 두들겨 맡고도 예술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림으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천지창조>가 있고 조각으로는 <피에타>, <다비드> 상을 들 수 있습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의 모델이 된 <Ilpenseroso>(그는 생각한다) 조각은 메디치가 묘당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홀로 서야 했던 그는 르네상스 시대 이태리 피렌체의 문화 예술 후원자 명문 가문, 메디치가의 응원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Man of Challenge, 도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메디치가를 처음 만날 때 <The Head of Faun>을 선물했습니다. 선물을 본 메디치가의 회장은 신화에 나오는 고령의 Faun의 치아가 너무 싱싱하다고 비평하였습니다. 그런 후 2시간 동안 후원을 산책하고 돌아와 보니 미켈란젤로가 Faun의 치아들을 부서트린 형태로 수정한 후 메디치가 회장을 만나려고 서 있었습니다. 언젠가 해부학에 몰입하여 인간의 근육을 배울 때는 수도원의 시체실에서 시체 해부 훈련에 몰입하며 도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도전의 사람입니다. 삶의 이정표마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이 장애물이라 여긴 곳에서 그는 가능성을 보았고, 불확실함이 앞을 가로막을 때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에게 도전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맞서야 할 기회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Man of Creation, 창의의 사람이었습니다. <계단의 성모> 조각을 보면 소년의 팔꿈치, 아기 예수의 등판 어느 하나 창의적이지 않은 게 없습니다. <다비드> 상을 보면 오른 다리를 뻗치고 왼 다리를 굽히고 있습니다. 그 대신 오른손을 뻗치고 왼손은 구부려 조각의 균형을 맞추었습니다. 이후 모든 조각가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근육질이 그대로 표현되고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 있는 그림은 후세에 여러 화가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깊은 신앙 안에서 끝없이 고뇌하는 영혼이었습니다. 그의 신앙심이 그의 창의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죽음은 훌륭한 인간을 천국에 데려다주는 두 개의 날개이다”, “만일 우리가 삶을 기뻐한다면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도 절망하지 않아야 한다. 죽음은 삶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위대한 거장(master)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미켈란젤로의 대표 조각 작품 <피에타>에서 예수님의 늘어진 손은 많은 작가가 모방했습니다. 또한 메디치가 묘당에 비치된 Il penseroso (그는 생각한다) 조각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천지창조에 319명 군상을 그린 그림은 동양의 작은 마을 칠곡의 작가 이쾌대 작가의 그림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미켈란젤로의 천재적 그림을 가져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창조의 사람입니다. 제한된 자원과 상황 속에서도 그는 언제나 새로운 길을 상상했습니다.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아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힘이 그에겐 있었습니다. 반복을 거부하고, 익숙함을 넘어서려는 그의 시도는 늘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의 손과 머리를 거친 곳엔 언제나 생기가 돌았고, 그의 생각은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변화의 씨앗을 심는 사람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Man of Commitment, 헌신의 사람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모든 돌덩이들은 그 속의 조각품을 품고 있고, 예술가 임무는 그것을 발견하고 해방시키는 것이다. 내 조각품은 살아 숨 쉰다. 왜냐하면 고통으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나의 작품은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천재 미켈란젤로는 Man of Commitment, 천재 이전에 대단한 노력가이었습니다.
<천지창조> 그림에는 390명의 군상이 그려져있습니다. 800평방미터의 큰 화폭으로 1508년 5월에 시작하여 잠시 중단되었다가 1512년 11월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천지창조> 완성 후 20년이 지난 1532년에 시작하여 1541년에 완성했습니다. 인고의 오랜 세월 헌신이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헌신의 사람,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시작은 하지만, 끝까지 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나 그는 달랐습니다.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 조용히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헌신은 말이 아닌 삶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도전(Challenge), 창조(Creation), 헌신(Commitment). 이 세 단어는 그의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우연히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목적을 따라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유행을 따르기보다 방향을 따랐고, 이익보다 가치를 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사람을 넘어, 하나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멈추지 말고 도전하라, 새롭게 창조하라, 끝까지 헌신하라.”
엄정희 교수 ( 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 북쌔즈 가족상담소 소장, 유튜브방송,<Dr.Duck 결혼에비학교> 진행, 도서출판 북쌔즈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