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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5-09-30 (화) 15:18 조회 : 257
어떤 언덕



‘꿈이 있는 자유’ 한웅재 목사님. 그런 ‘소원’ 하나 있었다지요.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바라는. 뭐 대단한 걸장한 일로 여기지만, 장한 꿈이라는 게 실은 별게 아닙니다. ‘높이 솟은 산’을 보며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오름직한 동산’의 소원이 더 장하다니까요. 대단할 수 없다는 자기 체념 때문 일지 모르지만, 저는 ‘오름직한 동산’ 쪽으로 몸을 기울여 삽니다. 그것도 벅차던데요. 감당하기 어려워 벅차고, 더러 소소한 기쁨을 주체 못해 벅차더랍니다. 두고두고 “그런 언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잘나고 반듯한 사람들만 오를 수 있는 언덕이라면 그 언덕 끝은 숨 막힐 것 같아요. “구부러진 길”을 따라 좀 모자란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어울릴 수 있는 언덕이어야 사람 사는 것 같지요. 그런 언덕은 “발 보다 눈이 먼저 닿”을 겁니다. 내 발이 닿지 않아도 이미 거기 내가 있는 동산. 무릇 좋은 사람들과 만나는 좋은 자리가 다 그럴 겁니다. 거기선 “지나는 사람마다” 다“여름을 약속”할지도 몰라요. 활짝 ‘열고’ 잘 ‘열어/맺어’ 이룬 여름, 열음. 그런 언덕에선 “젖어도 울지 않”아요. 거기선 눈물까지 나눠가지니까요.



그 동산엔 ‘바람’이 ‘길’을 낸다지요. 바람도 바람 나름이라서 어떤 바람은 고약하기 짝이 없어요. 바람 때문에 가던 길도 멈춰야 한다니까요. 그런 바람 휘몰아치면 길이고 뭐고가 다 소용없습니다. 살아보니까요, 세상 무섭게 휘몰아치는 바람이 ‘사람’의 ‘말 바람’이더랍니다. 혀끝에서 시작된 작은 바람이 폭풍을 몰고 오는데, 이거 걷잡을 수 가 없어요. 거두어 잡을 수 없는 말을 ‘바람’이 싣고 가는 언덕. 그래서 “사람의 뒷말 같은 것이 남지 않는” 동산. 그런 언덕은 “막 걸음을 배운 어린아이도… 오를 수 있”을 겁니다.



아이가 걷는 언덕은 꼬부랑 할머니도 “허공만을 쥐고” 빈손으로도 “혼자서 오를 수 있”을 테지요. 고개 넘을 때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겠다’고 치대는 어흥 호랑이가 없는 언덕길. 그냥 토끼랑 노루랑 친구 하면서 소풍처럼 길을 걷는 동산 길. 독사 굴에 손을 넣는 장난이라든가 사자와 어린양의 씨름 놀이가 하하 호호 그렇게 재미난 동산이라면, 그 언덕에는 어떤 풀과 꽃이 나고 자랄까요. 그 동산 풀 향 꽃 향을 맡으며 자라고 늙으면, 그 사람의 몸에서도 그 좋은 꽃 향 풀 향이 폴폴 향기롭지 않을까요.



밤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아침이 소중한 인생도 있습니다. 아니, 누구나 밤이 필요하고 누구에게나 아침이 소중하지요. 그렇게 ‘밤이 되고 아침이 되어’ ‘하루’가 생기고 세상이 창조되었더랍니다. 그럼으로써 ‘새벽부터 소란해’져 사는 이야기. 그게 ‘오름직한 동산 모습’ 아닐까요. “누군가는 밤으로 기억하고 / 누군가는 아침으로 기억해서”, 누구의 ‘기억’ 속에서든 생생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예쁜 이야기꽃이 피는 동산. 그런 ‘바람의 언덕.’ 숨겨두고 말을 안 해 그렇지 실은 그게 우리 모두가 ‘바라는 언덕’일 겁

니다.



예수께서는 오르지 못할 절벽이라거나 대단한 사람들만 오를 수 있는 꼭대기에 서 있지 않았어요. 세리와 죄인들이 오를 수 있는 구부러진 길의 언덕. 제 몸 파는 여인들과 몸도 가누지 못 하는 장애인들의 삶, 그 “끝에서도 내다보이는” 언덕. 가난한 자들과 어린아이들이 빈 주머니를 차고도 선뜻 오를 수 있는 언덕. 거기서 “나를 따르라” 하시는 예수를 봅니다. ‘높은 산’ 위에 ‘장막 셋’을 지으시려는 게 아니라니까요. 오름직한 동산을 위해 ‘내려가자’고 등을 떠밀고 손을 붙잡아 주신답니다. 모름지기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이며 ‘오름직한 동산’은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는 아침입니다. 평강.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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