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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없는 삶을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인간으로서 생존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들이 충족된다면, 바로 그다음에 필요한 것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배고파 죽겠어, 졸려 죽겠어’ 이런 말들과 비등하지 않더라도 ‘심심해 죽겠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내재된 이야기에 대한 욕구를 보여줍니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옆에 없다면 혼자서라도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떠올리고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이니까요.
퓰리처상 수상자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이야기를 들려줘요』는 한 인물의 삶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삶이 서로를 통과하며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공동체’를 그린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의 여러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올리브 키터리지』,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버지스 형제』, 『에이미와 이저벨』 등 이전 작품 속 주요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른바 ‘스트라우트 월드’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몇십 년에 걸쳐 구축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인물 세계가 한 작품 안에서 교차하며, 작가가 오래 탐구해 온 ‘관계와 기억, 상실과 연민’이라는 주제가 한데 펼쳐지는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팬데믹 이후의 미국 메인주를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변호사 밥 버지스는 작가 루시 바턴과 강가를 산책하며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이어갑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단순한 안부를 넘어, 상실과 죄책감, 가족과 기억, 사랑과 외로움에 대한 깊은 고백으로 확장됩니다. 한편 루시는 밥의 소개를 통해 올리브 키터리지와 만나게 되고, 또 다른 이야기의 통로인 올리브는 기억 속에 담긴 마을 사람들의 삶을 전달하고 루시는 마음 속에 그 이야기들을 기록합니다.
이 작품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다른 소설들처럼 사건이 서사의 중심인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 그 자체가 핵심이라는 점입니다. 인물들은 서로의 삶을 들려주고, 이해하려 애쓰고, 때로는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헤어집니다. 그러나 그 과정 자체가 관계를 형성하고 세계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됩니다. 스트라우트는 이러한 장면들을 과장 없이 담담한 문장으로 포착하며,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인간 존재의 취약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특히 ‘기록되지 않는 삶’에 대한 깊은 관심은 올리브가 어머니 사라의 오래된 사랑 이야기를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장면, 변호사 밥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청년 매슈를 변호하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장면, 루시가 딸과의 거리감 속에서 느끼는 고독 등에서 드러납니다. 개별 사건들은 모두 평범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겪는다면 결코 가볍지 않았을 삶의 무게를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인물들의 기억과 감정이 교차하며 하나로 수렴되는 주제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또 어떻게 서로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가’ 한편, 마을에서 일어난 흉흉한 사건과 그 주변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하나씩 밝혀지며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오해되고 고립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감정과 기억을 통해 공동체의 균열과 연대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그렇게 ‘이야기의 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물들은 서로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은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가장 적극적인 태도이자 관계를 향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스트라우트는 이를 통해 인간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비로소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전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한 권의 소설인 동시에 오랜 시간 이야기를 써온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진솔한 고백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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