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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6-09-30 (수) 15:36 조회 : 31
새, 집 짓는 얘기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 꽃밭이 내 집이었지. // 내가 강아지처럼 가앙가앙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 마당이 내 집이었지. // 내가 송아지처럼 겅중겅중 뛰어 다녔을 때 / 푸른 들판이 내 집이었지. // 내가 잠자리처럼 은빛 날개를 가졌을 때 / 파란 하늘이 내 집이었지 // 내가 내가 / 아주 어렸을 때, // 내 집은 많았지. / 나를 키워 준 집은 차암 많았지.

- 이준관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까치가 나뭇가지 입에 물고 가면 제 집 지으려나 보다 하지요. 저만치 멀리, 높이 짓는 까치 집. 너무 멀고 높아서 ‘저기는 세 들어 살기도 어렵겠다’ 했답니다. 어릴 적 살던 집 처마 밑에는 제비가 집을 짓고 살았어요. 제비는 멀리, 높이 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꼭 사람 사는 집 처마 아래 집을 지어요. 누구 허락받고 짓는 집 아니지만, 허락도 없이 집 지었다고 핏대 세워 제비 집 허무는 사람 없습니다. 그깟 처마 한쪽 내 주며 ‘월세 다오’ 달마다 쫓아다니지도 않아요. 월세라니요. 내 집 처마에 들인 제비 가족 사는 집, 그것도 다 ‘내 집’이고 ‘우리 집’이었는걸요. 제비가 ‘제비처럼’ 마당을 날아다니고, 지지배배 새끼 제비 배고파 쩍 벌린 입 바라보는 풍경이 가진 재산이었답니다.



‘그렇게 살던 시대’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어요. 내 집 한 켠을 선뜻 내놓는 건 미담이지만, 그걸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쉽게 받아들입니다. 내 집 처마에 제비 식구 들였다고 자랑하는 일 없고, 마실 가서 그 집 처마 제비 집 부러워하는 일도 없어요. ‘그렇게 살던 시대’에는 그렇게 ‘같이 사는 법’을 배웠나 봐요. 재밌는 건 제비가 사람 집 가려가며 제 집 짓지 않았다는 겁니다. 구중궁궐 기와 처마에 집 짓고 사는 제비가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내 살던 마을에 든 제비 집은 죄다 변변찮은 집 처마였습니다. 그 집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집주인 인물이 얼마나 잘났는지, 그거 고르고 가려가며 제 집 짓는 제비를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일 겁니다. 제비 집 자랑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 까닭이.



교회 가는 길에 참새가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모습을 봤습니다. 저 녀석은 왜 저리 바쁜가, 멈춰서서 가만히 지켜봤다지요. 가만 보니 주둥이에 지푸라기 같은 나뭇가지 몇 개를 물고 있더랍니다. 그걸로는 좀 부족한지, 여기저기 뭘 더 찾아 다니는 걸음으로 바빴던 거지요. 모르긴 해도 제 살 집, 제 알 낳고 품을 보금자리 마련하느라 그리 바빴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참새 집 짓는 걸 못 보고 자랐어요. 어딘가에 제 집을 짓고 살 텐데, 참새가 사는 집 주소나 지번을 찾아가 본 적이 없더랍니다. 힘없는 것들, 작고 사소한 것들은 제 집도 숨어 짓는구나 싶은 생각에 안쓰럽더랍니다. 그런데도 짹짹 참새 울음은 서럽지 않아요. 기분 좋게 유쾌해서, 들을 때마다 생기가 돌아요.



오래전, 이스라엘 갔을 때 만난 참새가 떠오르더랍니다. 숲도, 그늘도, 앉을 자리조차 변변찮은 거기 어디에 집을 짓고 살까, 괜한 걱정을 했다지요. 여우도 굴 있고, 공중 나는 새도 다 집이 있으니까요. 가려가며 집 짓는 게 아닌데 어디면 어떻겠습니까. 발 뻗고 머리 둘 곳 한 뼘이면 그만인 참새 집이지요. 그러니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태복음 8장 20절)” 하신 말씀이 어렵습니다. 그런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8장 22절)”하시니, 그 부름은 더 어렵게 들립니다. 뭘 몰라서 그럴 겁니다.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 꽃밭이 내 집이었”다는 걸 다 까먹어서. “내가 내가 / 아주 어렸을 때, … 나를 키워 준 집은 차암 많았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려서. “하늘 나는 새를 보라(마태복음 6장 26절)”신 말씀이 다시 새롭습니다.



평강.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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