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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의 러브레터, 꽃
지난 호에 이어 또 꽃 이야기입니다. 이번 호의 주제 사랑의 편지를 받고 꽃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꽃을 사왔습니다. 채 일주일이 못가는 꽃을 사고 또 사는 아내가 신기했습니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도,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어느 도시에서든 아내는 좋은 꽃시장을 잘도 찾아냈습니다. 어떤 때는 그것이 농부들의 시장이기도 했고, 꽃이 귀한 이런 몽골에선 들에 나가 에델바이스를 모아오기도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힘든 일을 겪을 때도, 눈앞의 근심이 클 때도, 꽃 한 다발 안으면 그 때만은 아내의 얼굴에서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지나고 보니 아내는 힘들 때일수록 꽃을 더 가까이 했습니다. 덕분에 나도 시나브로 꽃을 자주 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끊이지 않는 아내의 꽃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나는 다른 세상을 발견했습니다.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 꽃을 찍기 시작하면서 특별히 접사 렌즈로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꽃을 집에 유별나게 들여놓지 않았다면, 또는 내가 사진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꽃을 찬찬히 관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꽃을 보면서 감동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내 사진에 그렇게 꽃의 색이 스며들었습니다.
렌즈를 통해 아내가 매주 바꿔 담는 꽃을 보면서 나는 차츰 꽃이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탐라 수국과 로단테를 만나고 나서는 내 눈과 생각이 결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꽃이 더 아름답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꽃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만을 위해 존재하는 색과 형태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맨눈으로 꽃은 익숙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양한 렌즈를 통해 맨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가까이 꽃을 보게 되면, 익숙한 꽃이 추상의 피사체로 바뀌는 현장도 보게 되었습니다. 꽃이 왜 이리 연약한 모양이며, 반투명한 꽃잎이 어찌 이리 오묘한 색을 갖고 있는 것인가? 관찰이 깊어질수록 생각도 더해지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났습니다.
꽃은 각자가 가진 아름다움으로 이 세상에서 그 역할을 이미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 꽃뿐만 아니라, 만물이 모두 각자 존재 이유를 갖고 있으며, 또한 서로 다른 모양과 색을 갖고 있습니다. 통찰력이 생기고 추상의 세계가 열리면, 이윽고 꽃을 통해 사람이 보입니다.
최근에는 나도 종종 꽃을 삽니다. 우러나서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빚을 갚는 마음으로 사는 경우가 더 많은 걸 보니 여성의 본능적인 꽃 사랑, 생명 사랑에 다다르려면 그 거리는 아직 멀었습니다. 아내가 평생 꽃을 산 것은 꽃을 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스스로에게 선물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처음 해보는 아내 역할, 며느리 역할, 엄마 역할을 잘해 내어서, 이젠 시어미와 할미 역할을 잘 해내는 자신이 기특해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스스로에게 주고 싶었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 꽃을 사지 않아도, 이제 곧 주님이 보내신 사랑의 영상편지들이 세상 가득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함철훈 교수 (몽골국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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