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일칼럼

흘러간 영화를 음미하다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종이 필요하다

Apes! Together! Strong!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

영화 <혹성탈출>에서 유인원을 통솔하는 주인공 시저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자 리더십을 보여주는 유인원들의 구호입니다. 오늘은 1969년도에 한국에서 개봉해 많은 사람에게 반전의 충격을 안겨줬던 영화 <혹성탈출>을 성공적으로 리부트했고 이제 대단원의 마무리를 지은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거의 40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는 원래 세계 제 2차 대전 당시 연합국 백인들이 포로로 잡혀 있는 상태에서 일본 군인의 포로 수용소 상황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황인종인 일본인을 자주 접하지 못했을 테고 전쟁이라는 두려운 상황에서의 경험이 그들을 유인원으로 표현하게 했습니다.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인간과 유인원이라는 대결이 흥미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시리즈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 예상도 적중했지만 잘 모르는 인종에 대한 두려움을 유인원으로 표현한 것은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여하튼 첫 시리즈의 주인공인 찰튼 헤스턴이 영화의 끝에서 도망치다가 유인원이 지배하는 새로운 행성이 결국 핵전쟁으로 인해 멸망한 지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의 순간은 여전히 영화 역사상 기록에 남을 반전인 것 같습니다.

명작들은 후대 좋은 감독들에 의해 리메이크가 되기 마련입니다. <혹성탈출>도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는데요. 유독 이 영화의 리메이크 시리즈가 곤혹을 많이 치렀습니다. 왜냐하면 60년대의 감수성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이 달라졌고 영화의 메시지를 정확히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01년도에 팀 버튼 감독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 <혹성탈출>은 시대의 감성에 맞게 인종차별이라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만들어졌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요. 그러다가 2011년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영화가 만들어졌는데요.

2014년에는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그리고 2017년도에 개봉한 <혹성탈출: 종의 전쟁>으로 트릴리지가 완성되었고 첫 시리즈에 못지 않은 수작이라고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인간처럼 진화한 유인원을 등장시킨 새로운 시리즈는 놀랄 정도로 발전을 거듭하는 유인원과 ‘시미안 플루’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점차 퇴화하는 인간의 모습을 대비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류의 멸망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유인원과 인간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를 지켜보는 것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라고 할 수 있지요. 세 번째 영화인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제목에서부터 인간과 유인원이라는 서로 다른 종이 전쟁을 통해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게 될 것인지를 판가름하는 액션영화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큰 기대를 가졌던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적잖은 실망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유는 영화가 액션보다는 기존 세상에서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유인원들의 구원의 여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에서 유인원은 이미 거의 인간과 가까운 존재로 진화를 한 상태입니다. 시리즈의 첫 영화부터 유인원의 리더였던 시저는 인간 군대에게 가족이 죽임 당하는 시련을 맞습니다. 원래 평화주의자이며 인간과의 공존을 위해 힘썼던 시저가 인간을 향한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오르게 되고 그때부터 유인원 무리 전체도 위기 국면에 빠지게 되죠. 영화를 보는 관객 앞에는 바이러스로 인해 인간의 종이 멸종 위기에 놓이자 생존 본능으로 ‘인간성’을 버리면서까지 유인원을 처단해야 한다고 믿는 ‘퇴화하는’ 인간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싶지만 그것이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상황에서 자유와 자신의 터전만은 지키기 위해 싸우는 진화한 유인원이 있습니다.

시종일관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보다는 평화적이고 이타적일 줄 아는 유인원에 더 감정을 이입하기 마련이었는데 결국 유인원 리더 시저의 고뇌를 통해서 이분법적인 선과 악의 문제를 뛰어넘어 존재 자체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그때 영화는 새로운 존재를 소개시켜 줍니다. 바로 노바(NOVA)라는 어린 소녀인데요. 노바는 라틴어 단어로 새로운(new)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노바는 어린 여자아이로 비록 바이러스 때문에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퇴화돼 가는 인간의 모습 안에서 인간다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녀는 극중 유인원에 의해 입양이 되고 유인원의 가족이 됩니다. 외형은 인간인데 유인원의 가족으로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인간 군대의 리더 대령에게 유인원은 절대로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외모뿐만 아니라 아무리 유인원이 인간처럼 진화한다고 할지라도 유인원은 유인원인 것입니다. 존재적으로 절대 넘어올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대령은 항상 유인원이 인간을 뛰어넘을 것에 대해
두려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이끄는 대령은 유인원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인간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그들을 파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노바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과거 인간과 유인원이 싸우면서 주고받던 다툼의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노바의 언어는 인간이지만 유인원의 가족이 되는 언어였고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언어였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인간과 유인원의 가족 됨을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종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 말미에 인간의 위협으로부터 유인원을 인도해 온 시저와 그 무리들이 큰 호수가 보이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이제 이곳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 수 있고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리더 시저는 이 과정 속에서 큰 부상을 입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마치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입성할 수 없었던 모세의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비록 그들의 리더 시저는 없지만 그가 남긴 말은 그들과 함께 합니다.

“Apes, Together, Strong”
이제는 유인원만 뭉쳐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언어를 배우며 공존의 존재방식을 터득한 노바(NOVA)들이 함께 뭉쳐 있을 때 그들은 강해진다는 새로운 의미가 그들에게 더해지게 될 것입니다.


강도영 소장 (빅퍼즐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