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
나태주의 <풀꽃>이란 시입니다. 이 짤막한 한 편의 시는 평범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대게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것, 즉 각 아름답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히 보거나 여러 번 보거나 천천히 보면서 그 아름다움이 내게 오는 것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것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누가 아름답다고 칭찬해 주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들이 있습니다. 사진이 가진 힘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큽니다. 아름다운 사진 한 장에 즐거워질 수 있고, 세상의 그늘진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서 나의 자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활짝 웃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열리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진이 가진 힘이자 매력입니다. ‘바람을 담아내는 작가’로 유명한 함철훈 작가는 <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름다움이란 관점에서만 본다면 가장 상징적인 것이 꽃이다. 그러나 꽃의 아름다움은 사람과는 다른 차원이다. 사람을 촬영해보면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가치가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오랫동안 지켜봄으로써 표면만이 아니라 내면까지 보일 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는 너무나 바쁜 나머지 사람의 내면은커녕 표면적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산다. 인터넷, 스마트폰, SNS가 발달하면서 얼굴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더욱 적어졌다. 그러니 그 사람을 잘 안다고 말은 하지만, 그 사람의 어디가 아름다운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지켜봐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고 표면만이 아닌 내면까지 봐야만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은 뭐든 빨리 결정 내리고 사람을 섣부르게 평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반성하게 합니다. 우리는 ‘초스피드’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익숙해진 나머지 사람도 그렇게 봅니다. 쉽게 판단하고, 쉽게 정의하고, 내가 가진 사고의 틀로 상대방을 볼 때가 많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사람 본연의 아름다움을 놓치는 것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SNS로 소통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과거에는 없었던 ‘페북 친구’ 같은 말까지 생겨날 정도입니다. SNS에서는 누구나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사진과 글로 상대방의 생각과 생활을 쉽게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친구를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서로 시간을 들여서 알아가며 추억을 만들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면서 우정을 쌓는 것과는 그 깊이가 다를 것입니다.
‘사진으로 주위를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지키는 함철훈 작가는 국제 NGO인 VWL(Visual Worship Institute)의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가 몇 년 전에 몽골로 이사를 갔습니다. 손주까지 있는 할아버지가 훌쩍 떠난 것입니다. 그 용기도 부럽지만, 청년과 같은 에너지 넘치는 삶도 부럽습니다. 그 에너지 덕분에 오늘도 강의와 사진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함철훈 작가의 강의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강의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이 지닌 특징은 평소에 놓치기 쉬운 삶의 원리들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 몽골의 캄캄한 새벽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있습니다. 어두운 시간에 찍은 사진인데도 빛과 짙은 푸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어둠 속에서 푸름을 볼 수 있을까요? 그는 가끔씩 우리의 눈이 우리를 속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카레라 렌즈를 통해서 우리 눈이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인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 눈이 바라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셈입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흔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희망이 없어서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겠죠. 어둠 속에 푸름이 있듯, 절망 속에 희망이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요한 목사 (함께하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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