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일칼럼

주제를 생각하니 떠오르는 단어들이 내 머릿속에 대립하며 나열되었고, 그 말들의 의미가 모였다 흩어지며 또 다른 언어의 파편들이 지나갑니다. 더구나 조금 전 내가 이 캠프에서 했던 ‘복음과 예술’이란 제목의 강의에 대한 냉혹한 평을 아내에게 받았고, 이어 ‘아내의 유혹’이란 특별한 의미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다음 강의를 위한 아내의 조언이었지만 평가는 예리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강의 중 사용한 용어, 강의에 임하는 자세, 주어진 시간에 대한 배열, 목소리의 크기, 청중에 대한 배려… 등이었습니다. 좋은 약일수록 쓰다는 말이 있지만, 이 약은 먹을 때마다 정말 씁니다. 익숙해지는 일반 경험과는 달리 갈수록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 절망감이 더 커집니다. 이번 경우에는 차라리 강의를 맡지 않고, 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란 참혹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물론 아내의 평가가 언제나 잘못에 대한 지적 일색일 리는 없습니다. 많은 격려도 있고 오해도 있지만 듣기 나름입니다. 그 대부분은 나와 다른 시각과 가치관 때문인데, 그 이유의 가장 큰 차이는 성별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중입니다. 서로 다른 견해나 다양한 시각이 좋은 점도 있지만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성적인 차이에서 기인하는 부부간의 견해차는 디딤돌이며 걸림돌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평생을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래서 또한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느끼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내에 대한 내 귀는 긴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나를 가장 잘 아는 그것도 하나님이 내게 짝지어준 조강지처의 조언이고 의견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강의에 대한 냉혹한 지적 또한 쉽게 받아들여 삼키기엔 거칠고 쓰지만, 이 순간을 잘 넘기면 약이 된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상대에 대한 신뢰이며 믿음입니다. 방향을 바꾸어 생각하면 이 위기 또한 아내의 유혹입니다.  난 그 유혹으로 남자가 되었고, 남편이 되었으며,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모두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당시 우리 동네에서는 으레 어른들을 따라 절에 다녔고, 매일 새벽 할머니는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으시고 흐트러진 머리카락 한 오라기 없이 쪽을 트시고, 어머니의 시중을 받아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다놓고 천지신명께 빌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음력 초하루 고사를 드리는 날이면 아이들은 그 떡을 온 동네 모든 집에 돌리려 다녔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우리가 결혼을 얘기하며, 결혼식장으로 성공회 성당을 선택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의외의 일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결혼식을 아름다운 성당에서 하기 위해 성경 공부를 생전 처음 했으며, 세례를 받고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정을 이루고 세상을 살다가 우린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인제 와서 ‘하나님의 계획은 참 묘하고 놀랍다’라고 쉽게 얘기하고 있지만, 우리의 삶 자체가 감사이고 최고의 나날이었음을 서로 알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내가 남편이 되기 전, 내가 남자가 되기 전, 내가 크리스천이 되기 전… 어렸을 때입니다. 미숙하고 어리석은 의미에서의 어린아이이기도 하지만, 남자 여자의 구분이 없는 순진하고 열린 존재로의 어린아이였던, 할아버지가 웨일즈에서 한 장의 사진으로 할머니 아내에게 유혹을 당했습니다. 웨일즈의 아름다운 기도의 집(Ffald-y-Brenin 팔더브레닌)서 음악캠프가 진행되는 중입니다.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바이올린의 선율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창밖으로 정원의 나무가 보이고 창턱에 놓인 유리 화병을 아내가 촬영한 것입니다. 거기에 시각적 유혹이 보입니다. 우선 유리와 투명한 물 그리고 의도된 투박한 회벽이 대비되어 빛을 산란시키고 있습니다. 직선 위에 곡선이 어울리며 프레임 안에 프레임이 되풀이되며 공간의 깊이가 더해집니다. 사진은 선택하고 잘라내는 작업입니다. 이 사진에 절제된 아내의 유혹이 있습니다.

그렇게 남편으로 아내에게 여성성을 배우고, 아버지로서 아내와 자식을 낳아, 할아버지로서 할머니와 함께 손자 손녀를 키워보고 있는 오늘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남성과 여성이 하나인 또 다른 존재로서의 인간이 되는 중입니다. 이번처럼 혹독한 아내의 유혹이 수그러지지 않기를 오히려 바라게 되었다면 과장일까요? 성경이 결국 마지막 아담 예수에게 초점이 맞추어 지듯이 아내에게 유혹받은 남편들의 길이 나이만큼 더욱더 성숙한 인간의 길로 열려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함철훈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