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이야기’, 어떤 게 힘이 더 셀까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만들어 낸 ‘이야기’에 비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쪽 힘이 더 셀 겁니다. 그런데, 그건 표면에 드러난 힘일 뿐인지 모릅니다. 저 깊숙한 곳, 뿌리부터 새롭게 하는 힘은 ‘이야기’가 더 클 수도 있으니까요. ‘보름 게’를 먹는지 안 먹는지 관심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만, ‘아, 그렇구나’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탁’ 치게 하는 건 ‘사실’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 때문일 겁니다. ‘탈피’의 ‘사실’과 ‘제 그림자’의 ‘이야기’를 나란히 적어 놓고 시인이 하려는 말이란 ‘보름 게 먹을 것 없다’라는 게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놈은 제 자신’이라는 것이겠으니 말입니다.
얼마 전 설교에서 ‘내 주먹 믿고 사는 사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 오후 소그룹 모임을 위한 나눔지 첫 질문을 “자기 주먹만 믿는 사람을 본 적 있나요?”라고 달아두기도 했더랍니다. 그들이 믿는 ‘주먹’은 대체 어떤 주먹인지, 혹시 우리도 내 주먹 믿으며 살고 싶을 때가 있는 건 아닌지를 묻고 나누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모임을 마무리 지을 때쯤, 어느 그룹에서 리더가 해준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여느 사람처럼 큰 주먹도 아니면서, 대수롭지도 않은 ‘내 주먹’을 믿고 산다는 게 가당한 일이겠느냐’는 말이었지요. 듣고 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지 몰라도 제게는 딱 들어맞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잘것없이 작은 주먹보다 듬직한 주먹이 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작은 주먹보다 큰 주먹의 ‘그림자’가 더 클 것이니 말입니다. ‘보름’ 저 환한 달빛이 비치는 제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 주먹이-그 주먹으로 내리깔린 저 그림자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알아챈다는 것, 그리하여 빠른 걸음으로 물러설 수 있다는 것이 ‘속아 치는 도망’ 만은 아닐 겁니다. 어쩌면 그래야 사는 법을 아는 거지요. 그렇게 제 속살을 텅 비워내는 ‘속 빈 강정’이 되지 않고서는 도무지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놈’을 다른 데서 찾을 까닭이 없겠습니다. 샬롬.^^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