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CH 정기구독
정기후원
   

[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5-11-26 (수) 09:59 조회 : 280
‘꽁생애’도 괜찮아요



베갯머리에 떨어지는 머리카락 수효가 늘어가는 나이 / 아침이면 한 올 한 올 집어 내다 / 문득 살아온 시간을 접어 보는 나이 /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일만 하던 公生涯 그 나이 / 나도 공생애에 몸 던질 수 있을까 / 섧구나, / 굳센 마음 키우지 못할망정 / 술 한잔에 코 박고 세상일 근심도 싫어지니 / 이 나이 나를 자꾸만 쓸데없이 만드네 / 머리카락 떨어져 대머리 될 걱정이나 하는 / 드디어 꽁생애로 만들고 마네. - 고운기 <꽁생애>



꿈 없는 청춘 있을까 싶지만, 꿈 없는 청춘을 보냈습니다. 뭐 대단한 사람만 대단한 꿈을 꾸는건 아닐 텐데, 내 대단치 못함의 고스란함으로 ‘청춘의 꿈’을 꽁꽁 묶어두었던가 봅니다. 꿀 수 있는 꿈이 고작 ‘평범의 꿈’일 뿐인 청춘은 하찮고 초라했을 겁니다. 눈여겨 보거나 귀 기울여 듣는 이가 적은, 아주 작은 청춘의 하루는 그래서 크게 고민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었겠지요. 미치지 못하는 능력으로 욕심만 크게 부리다 낭패 보는 일이 드물었으니 저는 그게 타고난 복이라고 여깁니다. ‘그게 복이었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한편에서 보자면 시답잖고 답답한 처신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나이 예순을 앞두고 있습니다만 요즘 세상 나이 예순은 ‘아직’ 청춘일 겁니다. 경로당에선 나이 칠십도 애 취급당한다던데요. 그래서 ‘아직은’ “베갯머리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집어내”는 아침이 아닙니다. ‘아직’ 내 베갯머리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늘지 않은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씩 흰머리가 거슬려 핀셋을 들고 거울 앞에 서기도 한다지만, 그건 그냥 재미삼는 소일거리일 뿐입니다. ‘있는 놈이 더 한’ 불공평의 공식과 법칙의 적용은 머리카락도 예외가 아닙니다. 진즉부터 ‘머리카락 수효’를 헤아려온 친구는 ‘그 아까운 걸 왜 뽑느냐’며 놀라지만, 내게는 그저 사사로운 일일 뿐이지요.



욕심 없는 청춘을 보냈고 ‘아직’ 머리숱 줄지 않은 세월을 지나고 있습니다만, 그렇더라도 “문득 살아온 시간을 접어 보는” 때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신 게 나이 서른쯤이었다지요. 나이 서른에 “십자가에 못 박힐 일만 하”며 사셨답니다, 그분은. “그 나이 / 나도 공생애에 몸 던질 수 있을까” 시인은 묻지만, 시인의 물음을 지나 다시 나이 서른이 더해질 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섧구나.” 공생애는 언감생심. ‘사생활’ 단속도 어설펐을 나이 서른 언저리는 섧고 또 괴로웠을까요. 그때 ‘키우지 못한 굳센 마음’은 어쩌면 ‘섧지도 않은’ 밋밋한 나이 예순으로 웃자랐는지 모르겠습니다.



‘괜한 걱정말자’고 큰소리 떵떵 치며 설교합니다만, 지난 예순 세월이 어쩌면 ‘괜한 걱정’의 발자국을 찍고 살았을 겁니다. ‘못 박힐 일만’ 찾아살지 못하고 ‘못 박힐까 무서워’ 피해 살았던. 그래요, ‘베갯머리’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내 눈에 띄지 않았을 뿐입니다. ‘떨어진 것들’은 베갯머리에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대머리 될 걱정’만 걱정이 아닌 거지요. 그게 아니더라도 나를 ‘꽁생애’로 만드는 일체의 비결. 그 악수(惡手)에 매이고 묶여 ‘지금, 여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요, 그런데도, ‘섧지 않은’ 이 밋밋함이 외려 ‘복’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꽁생애, 꽁생원이 되어 사는 것. 그것도 괜찮더란 말입니다.



“술 한잔에 코 박고 세상일 근심” 한번 안 해 보고 살면 그게 뭔 재미랍니까. ‘그런’ 인생 ‘고것 밖에 안 되는’ 나를 실망하고, 싫어하면서 살기도 해야 재미난 인생이지요. 무엇보다, 그래야 하늘 쳐다본다니까요. 내 인생의 ‘꽁함’이 ‘싫어서’ 절망을 해봐야 하늘이 보이고 하늘에 기대는 법을 배워요. 나이 든다고 철도 드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나이로 유세 떨지 않습니다. “이 나이 나를 자꾸만 쓸데없이 만”들더라, 그 ‘쓸데 없음’의 땅 위로 기가 막힌 하늘이 펼쳐진다니까요. 그러니까 ‘꽁생애’도 괜찮습니다. ‘공생애’는 그분이 다 살다 가시라 하고, 우린 그냥 ‘꽁’ 한 인생으로 ‘하늘’ 보고 살자고요. 평강.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foot_이미지
개인정보취급방침 이용약관 이메일무단수집거부